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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대한민국 인터넷의 아버지 전길남
    첨부파일 2cbd1b2060d4f2503abe8eb95378e3c9.png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 전길남 박사. 일본 오사카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UCLA에서 시스템 공학을 전공한 그는 산업화에 뒤쳐졌던 한국이 발전하려면 고급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박사학위 취득 후 한국으로 향했다. 1970년대 말 컴퓨터를 국산화하자는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 전 박사는1982년 마침내 경북 구미 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학교 사이를 연결하는 최초의 인터넷 네트워킹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인터넷 역사의 시작점을 찍고 대한민국이 오늘날 인터넷 강국으로 도약하는 초석을 놓은 전길남 박사. 그의 인생을 만나 보자.

     

     

     
              

    1943년에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어요. 경상도가 고향인 부모님께서 일찍 일본에 정착하셨고 저는 대학교까지 일본에서 나왔어요. 2차대전 직후에는 누구나 고생을 한 시절이죠. 저희 집도 마찬가지였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풍족하게 생활한 것 같아요. 재일교포로서는 여유롭게 살았던 편이었죠. 하고 싶은 것도 다 하면서 살았으니까요.

    저는 활달한 성격의 평범한 아이였어요. 공부보다는 운동을 훨씬 더 좋아했죠. 등산, 수영 등 안 해 본 운동이 없을 정도였어요. 수영선수를 하느냐 마느냐는 고민까지 할 정도였으니까요. 수영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수영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해야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수영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제 수영 실력이 금메달을 딸 수준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어요.

     

    수학을 좋아했어요. 그냥 수학이라는 과목이 가장 편하더라고요. 어린 시절, 형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는데 토론 주제는 항상 비슷했어요. ‘대학 졸업하고 은퇴하고 나면 뭐 하면서 살까?’하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죠.

    저는 “네팔에 가서 높은 산을 바라보며 수학문제를 풀면 행복할 것 같다.”고 대답하곤 했어요. 수학문제라는 건 무한대잖아요. 하루만에 풀 수 있는 문제도 있고, 답을 찾는 데 10년씩 걸리는 문제도 있고요. 높은 산에 올라가 그런 수학 문제들을 하나씩 풀면 행복할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생각해보니 그게 인생이더라고요. 수학 문제를 푸는 식으로 삶을 살고 있는 거죠. 수학문제도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가 시원하게 풀리면 굉장히 기분이 좋지만 어려운 문제를 만나서 답을 찾지 못하면 기분이 좋지 않잖아요.     






     

     

     

     

     


    <출처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83&contents_id=52148&leafId=83 >

     

     

     




    제 목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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