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ES 로그인
아이디
패스워드
로그인 유지
아이디 찾기 | 패스워드 찾기
  • 홈페이지 설정
  • 회사소개
  • 고객센터
  • 즐겨찾기
  • 가누다 베..
    췌장암 진..
    수액주사..
    대전 퓨마..
    디지털,가전
    컴퓨터
    IT,인터넷
    정보통신
    유통,무역
    도소매
    의류
    요식업
    외식
    자동차
    부동산
    식품
    농축수산물
    제조
    레저/여행
    스포츠/숙박
    의료,건강
    서비스
    교육
    문화,예술
    금융카드
    보험
    법률
    사무/회계
    건설,운수
    기계
    전기/전자
    여성
    육아
    블로그
    카페
    트위터
    페이스북
    기타SNS
           
          
          
          
          
          
          
          
          
          
          
          
          





       
    [경제] 한국 소비자 운동의 개척자
    첨부파일 RNorBo6ABrck138I2O5G5R6moICdIm2.jpg

    송보경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소시모)’의 창립 멤버로 외국에서는 판매 금지된 다국적 의약품이 한국에서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는 등 소비자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송보경 교수. 소비자운동이 낯설고 소원했던 시절부터 소비자운동 한길을 달려온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자.

    <소비자운동가 송보경 인터뷰 영상>

    저는 서울에서 자랐어요. 무남독녀로 집안에서는 혼자였지만, 성격이 활발했고 장난이 좀 심한 편이었어요. 그때 당시 지금 명동에 위치한 남산초등학교에 다녔는데 전쟁이 끝날 무렵이었기 때문에 다른 문화적인 즐길 거리가 많지 않아서 만화책을 많이 봤죠. 지금도 38선에 관한 이야기, 엄마를 잃어버리는 내용의 만화책들은 기억이 나요.

    또 당시에는 학교 숙제가 많았어요. 친구들과 팀을 짜서 산수, 국어, 사회생활, 음악 등 한 과목씩 맡아서 숙제를 하고 함께 모여 그걸 쭉 베꼈죠. 그 다음엔 남산 약수터에 가서 노는 거죠. 그렇게 자랐어요. 그때 그 남산초등학교 6학년 8반 친구 다섯 명을 지금까지도 만나고 있죠.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시험을 봐서 이화여중에 들어갔어요.

    돌이켜보면 학교 다닐 때 지도력은 있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 반장을 맡았고, 누군가를 도와야 할 일이 생기면 앞장서서 도맡아 했죠. 무슨 일이든 크게 결심을 하거나 다짐을 하고 한 일은 없어요. 그냥 필요한 일이니까 자연스럽게 한 거죠. 특별히 다른 사람과 좀 다른 점을 찾는다면, 제가 고집이 센 편이고 궁금증이 많았어요. 궁금한 일이 생기면 계속해서 깊이 파고 들었지요. 무슨 일이 있어도, 돈이 많이 든다고 해도 궁금한 일은 해결을 봐야 했어요.

    송보경 교수는 2009년 유관순상을 수상했다. 송교수는 이 상을 수상하면서 ‘유관순’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맡은 일은 해결될 때까지 매진하는 성격과 어울린 이유 때문이다.

    ‘유관순’이라는 별명은 어릴 때 별명이 아니라, 2009년에 받은 ‘유관순 상’ 때문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 생각에 제가 좀 나서니까 그런 이미지를 가질 수도 있겠죠.

    저는 사실 정부에서 주는 국민훈장도 받고 동탑산업훈장도 받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제가 한국에서 소비자운동가인데 정작 소비자운동가에게 주는 상은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에요. 평생 일해 온 분야의 상보다는 누군가가 다른 데서 챙겨주는 상을 받은 것 같아요. 유관순 상도 누가 챙겨줘서 받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소비자운동에 대한 업적으로는 아직까지 상이 없습니다. 재미있죠?

    누굴 닮았는지는 잘 모르겠고, 아버지께서 일찍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머니께서 밖에 나가 일을 하셨어요. 집에서 제가 관심의 대상이긴 했지만 어머니께서 저를 끼고 계실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주로 친할머니의 손에서 자랐고, 자연스레 어머니보다는 할머니와 가까웠어요. 지금도 할머니를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죠. 어머니와는 함께한 시간이 많지 않아서 거리감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고, 다른 모녀간처럼 끈적끈적한 관계는 아니었다는 거죠. 아버지가 안 계셨기 때문에 버릇없이 자라지 않도록 어머니가 상당히 예의 바르게 훈육을 시키셨던 것 같아요. 존댓말을 해야 하고 인사도 바르게 해야 했어요. 어찌 보면 어머니와 딸의 관계이지만 냉정하게 훈련이 돼서 제가 독립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한 집에 둘이 살면서 너무 밀착되면 서로의 생활이 없을 거 아녜요. 서로 독립적이니까 딸도 편하고 어머니도 편한, 그런 관계로 평생 사는 거죠.

    송보경 교수는 1983년부터 소시모를 이끌고 있다. ‘소비자’의 개념과 주권, 역할이 전무하던 시절부터 그는 소비자의 권리를 위해 힘썼다. 모유수유 권장운동부터 화학조미료 덜 먹기 운동 등 굵직한 사회적 쟁점들을 다루면서 소시모는 한국 소비자 운동의 역사를 개척해 왔다.

    저희가 1983년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소시모)’을 시작했는데, 초대 소시모의 회장은 김동환 변호사였어요. 그 당시에는 상당히 신선했던 단체였지요. 그때만 해도 소비자운동은 주로 여성 단체들이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남녀가 같이, 그리고 전문가들이 모여서 소비자운동을 시작했다는 이유로 많은 주목을 받았죠. 또한 저희가 1983년부터 다뤘던 쟁점들이 사회에 상당히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는데, 당시 소시모에 관여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걸 긍지로 생각했죠.

    그때 저희가 제일 먼저 했던 일이 모유수유권장운동이었어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모유보다 조제 분유가 더 좋다고 소비자들이 인식하고 있었거든요. 그 인식을 바꿔놓는 일을 한 거예요. 기업의 판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행동이었기 때문에 저항이 상당했었죠. 두 번째로 한국 사회의 소비 행태에 대해서 그릇된 점을 바로 잡았는데, MSG라고 하는 화학조미료를 먹지 말자는 운동을 한 거예요. 사실 먹지 말자고 한 게 아니라, ‘안 먹는 게 좋아요, 화학조미료’라는 캠페인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소시모가 그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화학조미료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광고를 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그러나 그때는 그랬고 그 일로 인해 기업들의 반발이 상당해서 저희가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었어요. 소시모는 그렇게 커다란 쟁점들을 다루면서 한국 사회에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죠.

    제가 지금껏 소비자운동을 해오며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걸 하나 꼽으라면, 1986년에 있었던 일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시 외국에서는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아 쓰지 못하는 농약이나 의약품이 우리나라에서 팔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걸 발견하고 문제를 제기했죠. 제 스스로 소비자운동에 뛰어들기를 잘했다고 자부하는 건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제가 그 사건을 들어 우리나라 전문가들은 도대체 뭐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전문가 분들이나 언론에서는 오히려 소비자 단체가 왜 전문적인 의약품을 다루느냐고 지적했어요. 우리가 그 의약품의 성분을 가지고 분석한 것이 아니라 영어 설명서만 정확하게 해석해도 해롭다는 판단이 나오는데, 그런 지적을 했다는 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믿기지 않는 일이죠. 다른 나라에서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아 판매를 금지시킨 약품을 우리가 사들여서 판매하던 그런 터무니없는 시절이 있었어요. 그것을 변화시켰다는 게 소비자운동가로서 지금까지도 대단한 긍지를 갖게 해요. 앞으로는 그런 사건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986년 4월 26일로 기억하고 있는데,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 폭발사고였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원전 인근의 생태계가 송두리째 파괴됐으니까요. 그때 체르노빌 방사능 낙진(落塵: 방사능 물질이 풍향에 의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떨어지는 현상)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오염된 식품들을 다 폐기 처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외국에 있는 소비자 단체로부터 한국 기업이 그것을 수입해다 팔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우리가 쓰레기로 버린 것을 너희 나라는 왜 사 가느냐”고 묻더라고요.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듣고 바로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문제제기를 하려면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 안 들어왔는지, 들어온 것의 품질은 어떤지를 확인해야 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세관까지 쫓아가서 확인해보니 들어온 흔적은 있더라고요.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문제제기를 못하는 거죠. 무역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품질로 해야 했기 때문이에요. 방사능에 오염된 제품이 있어야 가능하니까요. 그래서 국가시험기관에 먼저 의뢰를 했는데, 검사하기를 어려워하더라고요. 다시 방도를 찾다가 국회의원에게 부탁해 검사를 했는데 방사능 낙진에 오염된 식품들이 들어와서 팔리고 있는 게 맞았습니다. 한 분유 회사의 제품을 검사했더니 22.4베크렐(Becquerel)의 방사성 세슘이 검출 되었어요. 그럼 그것은 당연히 폐기되어야 하는데 버젓이 시중에서 팔리고 있더라는 거죠. 우리나라가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소시모는 그런 문제들을 시정하려고 노력을 해왔습니다. 모든 기업의 목적이 이윤 창출이라고 한다지만 소비자의 건강을 해치는 이윤 창출은 안 되죠. 그걸 잘 판단하는 정부의 중간 역할이 중요한데, 그 시절엔 정부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었어요. 우리나라 헌법 제 124조에 국가는 소비자를 보호해야 된다고 명기되어 있거든요. 무엇보다도 소비자 보호가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하는데 정부는 22.4베크렐(Becquerel)이 안전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죠.

    ‘소비자 문제’에 진보가 어디 있고 보수가 어디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먹는 식품이 안전한가 아닌가 하는 거죠. 보수의 식품과 진보의 식품이 따로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정치적으로 우리를 진보나 보수나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고 싶은 생각은 있을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처음부터 식품안정성 그 한 가지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우리가 활동하는 이유는 소비자의 권리나 소비자의 주권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니까요. 그러니 소비자가 안전한지, 소비자가 정확한 정보를 얻고 있는지,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이 가능한지, 소비자의 의견이 반영됐는지를 보는 거죠. 다시 말하자면, 소비자의 권리에 입각해서 사안을 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일하는 원칙입니다.

    그리고 소시모는 실증 자료가 있어야만 이야기합니다. 과학적인 근거가 없으면 이야기는 물론 전혀 움직이지 않아요. 우리가 신뢰할 만한 정보원으로부터 신뢰할 만한 정보가 손에 들어와야 말하기 시작하지, 소문에 의해서는 움직일 수 없죠. 과학적인 근거에 바탕을 두는 것, 그것이 소시모가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소비자 문제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지 지적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으로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죠.

    2003년 소시모가 주관한 올해의 에너지 대상 시상식에서 송보경 당시 회장이 수상자에게 상패를 전달하고 있다. 소시모는 소비자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소비자 운동과 함께 소비자들도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윤리적 소비 활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에너지 절감과 재생에너지 개발 등에 대한 관심도 이런 차원의 소비자 운동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을 잘 들여다보면, 절약과 효율화도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에너지 소비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정부와 기업, 소비자가 모두 바뀌어야겠지만 먼저 잘못된 정책을 수정해야 해요. 산업 보호에 치우친 에너지 정책 때문에 소비자의 희생이 강요되고 있거든요. 그건 잘못된 거예요. 기업에는 턱없이 너그럽고, 소비자에게만 희생을 요구하면 되나요?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공급에서 수요로, 산업 보호에서 소비자 후생으로, 압박에서 설득으로 바뀔 필요가 있어요. 누진제와 같은 편향된 요금 체계로 일반 소비자를 압박하는 것도 바뀌어야 합니다. 정부가 에너지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면서 에너지 소비의 형평성을 해쳤는데 그 부분도 달라져야 된다고 봐요. 그리고 정책 결정도 공급자 중심에서 이뤄져서 소비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는데 이젠 정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같은 사실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이해 당사자들이 의견의 격차를 좁혀가는 ‘리스크 커뮤니케이션(Risk Communication)’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착한 소비’, ‘윤리적 소비’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소비자 나름의 생각과 소신이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저는 다른 것에 대한 배려가 있는 소비를 윤리적인 소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때 다른 것이라 함은 인간을 비롯해 자연까지를 포함한 것을 말합니다. 즉, 타인과 자연에 대한 배려가 있는 소비인 것이죠. 우리가 무엇인가를 소비한다고 하면, 모든 소비 행위는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다른 것에 대해 고통을 주고 해를 주기 마련이에요. 예를 들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서로 의논하기 위해 움직이려면 휘발유가 소모되고 그로 인해 공기가 오염되잖아요. 이때 윤리적 소비라는 것은 그 해로움을 최소화하려는 의식과 노력에서 시작되는 것이죠. 인간의 자연에 대한 배려, 소비자의 생산자에 대한 배려, 그렇게 상대편에 대한 배려를 하는 소비, 그것이 윤리적인 소비, 착한 소비라고 생각됩니다.

    예를 한 가지 더 든다면, 요즘 들어 많은 사람들이 유기농을 선호하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생각할 것이 있어요. 유기농 제품은 ‘안전하고 맛있다’라는 차원이 아니라, 유기농 그 자체가 윤리적이라는 것을 생각해야죠. 일단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아서 자연을 덜 파괴했지만 그것 때문에 농민들은 더 많은 고생을 했을 것 아니에요?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그에 대한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한 거고, 그것이 바로 착한 소비인 거죠.

    그러나 우리나라의 유기농 산업 현황을 보면 유기농 제품을 만든 농민에게 이득이 가기보다는 유통업자들에게 더 많이 가고 있어요. 그걸 개선해야 하는 거죠. 유통업자들 입장에서는 유기농 제품을 유통하는 것이나 일반 제품을 유통하는 것이 뭐가 다를 게 있겠어요? 유통시키는 데 비용이 달라지나요? 움직이는 건 어차피 똑같잖아요. 그런 면에서 착한 소비가 고려할 점은 내가 구매한다면 누구한테 이득이 더 많이 돌아가느냐를 정확히 알아서 이를 공정하게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한국 시장에서 단단히 고려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의 소득은 선진국을 내다보고 있어요. 요즘 아무리 불경기라고 해도 개별적인 소비 수준은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소비가 그만큼 늘었으니 이제는 의미 있는 소비와 재미있는 소비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 재미있는 소비라는 것은 재미 그 자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와 결합된 소비를 말하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윤리적인 소비도 재미있는 소비, 의미 있는 소비라고 볼 수가 있는데, 과거 우리나라의 소득이 1,000불 정도일 때는 생존을 위한 소비에만 목숨을 걸었잖아요. 놀지도 않고 생산만 하고 가족도 돌보지 않고 말이죠. 그랬는데 그 결과를 보고 지금에 와서 사람들이 우리에게 남은 건 뭐냐는 지적들을 하게 되었죠. 그러니까 소비를 할 때 그저 소비를 위한 소비가 아니라 앞을 내다보는 의미 있는 소비, 재미있는 소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든다면 문화 예술을 가까이 하고 이를 통해 자기 스스로가 예술과 문화에 훈련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남과 즐거움을 연결하고 나눌 수 있어야 의미 있는 소비 행위가 되는 거죠.

    TV에 홈쇼핑이 막 생겨나기 시작할 때 가짜 보석 사건이 있었는데 아주 재미있었어요. 제가 이 일을 오래 해서 그런지 몰라도 소비자운동을 하는 사람의 눈은 좀 남다른 것 같아요. TV에서 분명 보석이라고 광고를 하는데 값이 너무 싼 거예요. 그래서 그걸 구매해서 검사 기관에 의뢰했더니 보석이 아닌 유리더라고요. 우리도 결과에 너무 놀라서 서울 시내 감정 기관 다섯 군데에 더 의뢰를 했죠. 역시나 모두 유리 성분으로 판명되었어요. 우리가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은 그 회사가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고 회사는 문을 닫았어요.

    기억에 남는 홈쇼핑 사건이 하나 더 있는데요. 화장품 광고였어요. 광고에 거품이 아주 없을 수는 없겠지만, 너무 심한 광고는 조금 거리를 두고 분별력 있게 봐야 해요. 광고에서 호스트가 화장품을 마시더라고요. 좀 이상했어요. 화장품 안에 비타민C가 들어있어서 마음놓고 마실 수 있고 그 안에 방부제는 들어있지 않다고 했어요. 우리는 의심만 할 수 없어서 실증 자료를 얻기 위해 구매한 뒤 검사를 했죠. 그랬더니 방부제가 검출됐어요. 비타민C는 없었고요. 그래서 결국 그 화장품도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죠.

    소비자의 책임이 강조되어야 할 부분은 환경 보호와 자원 절약이에요. 앞서 말한 윤리적인 소비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요. 자연과 환경을 솔선수범하여 보호하고, 약자에 대해 배려하며 그런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근로자에 대한 대우, 약자에 대한 태도를 포함해 환경과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썼는지 살펴봐야 해요. 이 모든 것을 배려한 생산품이 나와야 하고 그런 생산품을 만드는 회사를 책임 있는 회사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기업은 무엇보다도 안전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야 해요. 한국은 아직까지도 안전성에 대해 안심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자선사업을 많이 하는 기업이 좋은 기업은 아니에요. 판사가 판결문으로 말하는 것처럼, 기업은 제품과 서비스로 말해야 하는 거죠.


    분명히 있어요. 소비자의 노력으로 어떤 사건을 통해 시장이 한번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바뀐다고 볼 수 있죠. 외국에서 못 쓰는 의약품이 들어오는 일은 이제 없잖아요. 그것은 국가적 차원의 노력도 있었지만 소비자들이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바꾼 것이거든요.

    소비자는 제품을 선택할 때 꼼꼼히 잘 따져봐야 해요. 저는 소비자의 선택이 시장을 바꾼다고 믿어요. 소시모라는 이름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소비자에게는 두 가지 역할이 있는데, 하나는 소비자의 구매이고 하나는 투표에요. 서울 시민이라고 한다면 시민이 자기 의사를 나타내는 건 투표를 통해서잖아요. 시민으로서의 의사 표시로 시위를 할 수도 있지만, 최종 결정적인 행위는 바로 투표예요. 소비자가 시장을 바꾸는 최종적인 방법은 구매이고요. 즉, 구매 잘하고 투표 잘하면 세상이 바뀐다는 거죠.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는 방법 같지만 구매와 투표야말로 시장을 정상적으로 건강하고 튼튼해지도록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죠.


    서울여대 교수를 지낸 송 교수는 학교에서 ‘칼’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깐깐한 성격이다. 실수를 하면 인정하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도록 정확하게 표현하고 행동할 것, 그리고 정직할 것을 강조했다.

    저는 무슨 일이든 핑계 대는 걸 싫어해요. 제자뿐만 아니라 조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말해요. 핑계대지 말라고……. 사람이 실수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핑계를 대면서 남을 끌어들이는 행동은 실수보다 더 나쁜 태도라고 생각해요.

    미래 사회는 두 가지가 겸비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다고 봐요. 하나는 정확한 표현과 행동이에요. 가령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본의 아니게 그랬다는 대답은 없어야 해요. 어떤 일이든 정확히 표현하고 행동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남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거든요. 두 번째는 정직성이에요. 저는 학생들에게 이 둘을 상당히 강조해요. 정직은 다른 이름으로는 신용인데 이 사회에서 신용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신용이 없고 정직이 없으면 인정받을 수 없어요. 잠깐 어떤 위기를 모면할 수는 있어도 지속적인 관계는 불가능하죠.

    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깐깐한 교수로 불리긴 해도 학생들이 절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아마 다른 교수들이 저만큼 했으면 악성 댓글을 달고 야단이었을 텐데 저와 학생들 사이엔 기본적인 신뢰가 있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아 저 교수는 우리를 사랑하는구나’라는 믿음이 있는 거예요. 그 믿음 때문에 아름다운 관계가 지속되는 것 같아요. 저는 잘못된 점을 보면 학생들을 서슴없이 야단쳐요. 예를 들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에도 태도가 잘못됐으면 불러 세워서 야단치거든요.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누군가는 한번 지적을 해줘야 해요. 왜냐하면 승강기는 내리고 난 다음에 타는 거잖아요. 그런데 학생들이 문 열리면 그냥 밀고 들어오는 거예요. 그걸 아무도 지적해주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내리기도 전에 타는 거예요. 그럼 저는 불러다 세워놓고 지적하죠.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제가 야단을 치더라도 인격을 존중하면서 한다는 거죠. 그래서일까요? ‘칼’이라고 불리면서도 학생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것 같아요.

    제가 평생 이 일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 일은 팀워크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거든요. 소시모의 일들은 저 혼자의 힘으로 이뤄낸 것이 하나도 없어요. 모두 팀으로 함께 힘써온 일이죠. 저는 어려서부터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았어요. 그 덕분에 좋은 평가를 받으며 살 수 있었어요. 그게 정말 커다란 축복인 거죠.

    다음으로는 제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점이겠죠. 교육을 받아서 학력이 높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부담이기도 한데, 저는 배운 것을 다시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소비자운동을 시작한 것 같아요. 영어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외국에서 못 쓰는 의약품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요.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과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평생 같은 목표를 향해 뛰어올 수 있었다는 것, 이건 제 인생의 어마어마한 행운이었다는 생각을 해요.

    왼쪽이 송보경 교수, 오른쪽이 김재옥 회장. 소시모의 김재옥 회장은 송교수의 이화여고 2년 후배로, 소시모 운동을 함께한 동지이다. 그리고 사진에는 없지만 강광파 전 회장 등 3인은 소시모 창립 3인방으로 불린다. 30년 넘게 소비자 운동을 큰 무리 없이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압도적인 지도자의 리더십이 아닌 전문가들의 역할 분담과 합의에 의한 결론 도출, 그리고 이런 동지적 팀워크 덕분이었다.

    아마 우리 집이 넉넉했었다면 저는 딴따라가 됐을 거예요. 제가 꽤 낭만적인 사람이거든요. 사실 소비자운동은 낭만적이지 않으면 할 수가 없어요. 현실적이고 계산적이면 못해요. 내가 꿈꾸는 세상이 온다고 믿으니까 지금까지 이 일을 해온 거예요. 제 주변엔 예술가가 많은데 예술 하는 친구들이 좀 엉뚱하잖아요.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소비자운동을 하는 친구들도 엉뚱한 거죠. 사실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해줬어요. 어떻게 시장을 바꾸려고 그러냐, 그게 가능한 일이냐며 저를 안타깝게 바라보았죠. 그런데 개의치 않았어요.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일을 해온 거죠. 요즘도 제 주변엔 변함없이 엉뚱한 친구들이 많아요. 그 친구들과 모여서 어울리며 잘 지내고 있어요. 운이 좋게도 저에게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다음으로 특별히 책이 많은 위로를 주었어요. 생각해보면 친구 다음으로 책만큼 좋은 위로가 없다고 봐요. 책 안에는 어떤 일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들어 있잖아요. 저는 그게 참 좋았어요. 책 속에서 사례를 찾아내고 지혜를 얻는 것, 무슨 책이든 사례가 있으니 그걸 보면서 행복하게 살아온 것 같아요.

    저는 소비자운동가와 교수, 두 가지 일에 만족하며 살아왔어요. 소비자운동은 끊임없이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에 축복이었고, 교수라는 직업은 제가 생존할 수 있는 물질을 제공해줬으니 축복이었죠. 거기서 더 이상 탐하지 않았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서울여대 교수로 22년 동안 학생들 앞에 섰는데 한번도 휴강을 한 적이 없어요. 외부 강의는 소시모 일과 관련된 것이 아닌 다른 일은 안 했어요. 외부 강의를 하면 돈이 생기고 사람이 화끈화끈해지거든요. 환호와 박수도 받고 칭찬도 듣고 하니까요. 그러나 저는 교수로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외부 강의 제안은 모두 거절했어요. 교수직 하나로 제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재정은 충분했거든요. 저도 돈 좋아해요.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제가 돈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저 자신을 조절해 올 수 있었다고 봐요.

    저는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걸 피하는 경향이 있어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권력’과 ‘돈’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 두 가지를 피해 다녔어요. 아마 그것에 묶여 살았다면 소시모 일을 지속할 수 없었겠죠. 요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조마조마해 보여요. 멀쩡한 사람들도 권력을 쥐게 되면 이상해지더라고요. 저에겐 그것을 별것 아니게 볼 수 있었던 눈이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게 결국은 큰 축복이었죠.

    남들이 보았을 때 크게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명예는 얻은 사람이라고 제 스스로 생각합니다. 택시를 탔을 때 기사님들 중 3분의 1은 제게 인사를 해주세요. 그 중에는 택시비를 안 받겠다는 분들도 더러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안 드린 적은 없지만요. 가끔 그렇게 택시 기사님들께 받는 인사를 최고의 명예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들은 저하고 아무 관계가 없잖아요. 그런데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 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몰라요. 소시모 일을 해오면서 힘들고 속상한 적도 많았지만, 택시 기사님들의 따뜻한 위로를 받으면서 저 자신이 충분히 보상을 받았고 그걸로 충분히 명예를 얻었다고 생각해요.


    결혼을 안 하려고 한 것은 아니고, 그냥 안 된 거예요. 지금도 비행기 타고 가다가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눈이 맞고 마음이 맞고 좋아지면 결혼할 수도 있어요. 하하. 소비자운동을 하면 외로울 틈이 없어요. 늘 찾아다녀야 하니까요. 가령 코카콜라 캐러멜 색소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거기에 대해서 다 찾아봐야 하거든요. 관련 서적들을 뒤지고, 관련 기관들을 찾아 다니고 그러면서 끊임없이 연구해야 해요. 그리고 또 조제 분유와 모유의 차이를 알고 싶다면 조제 분유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확인해야 하죠.

    요즘 사람들이 많이 읽고 있는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공감의 시대(The Empathic Civilization)]를 보면 엄마 젖이 얼마나 중요한가가 나오던데 다른 분들은 그 내용을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어요. 제 생각엔 아마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저는 다른 사람들이 지나치는 걸 보는 거죠. 제레미 리프킨이 강조하는 것은 엄마 젖을 먹는 것이야 말로 아기가 태어나서 인간과 공감을 할 수 있는 첫 번째 훈련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 이야기에 얼마나 귀를 기울일까요?

    요즘 좋은 조제 분유가 많이 나오잖아요. 굳이 엄마 젖이 아니어도 아이들에게 충분히 그 이상의 영양을 공급할 수 있다고 다들 생각해요. 엄마들은 어느새 분유에 익숙해져 있어서 영양적인 부분만 충족되면 된다 생각하고 공감의 훈련 과정은 훌쩍 뛰어넘고 싶어 해요. 모유를 먹이는 일이 귀찮고 힘들다는 거죠.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지 않고 무얼 기대할 수 있을까요? 부모자식간의 기본적인 공감 훈련을 간과하고서 나중에 자식이 성장한 후에 어떤 사람이 되길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저는 주로 그런 생각을 해요. 현재의 일만 생각하지 않아요. 미래를 내다보죠. 역으로 생각하는 것도 좋아하고, 책을 보는 방식도 다른 사람들과 좀 달라요. 늘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바꾸어서 다시 생각하고, 그러다 보니까 외롭고 어쩌고 말할 시간이 없어요. 다른 사람 원망하고 할 시간도 없고요.

    저 사는 걸 보고 이쪽 분야의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학생들이 더러 있어요. 그러나 제가 이쪽 분야의 일을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아요. 저는 남의 인생에 관여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중매도 안 해요. 저는 그저 제 일을 할 뿐이지 제자한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간섭하지 않아요. 그래서 학생들이 저에게 칼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늘 알아서들 하라고 말해요. 인생은 자기가 선택하는 거죠. 자기가 선택해서 개척해 나가고 그러다 보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그런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이 절 보면 참 싱거운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정말 싱겁게, 그러나 우리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살아왔어요. 지금까지 어떤 큰 결심으로 움직인 건 아니고 눈에 보이는 일, 주어진 일을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고요. 제 인생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저는 그냥 무색, 무취의 인간인 거예요. 제 고유의 색을 만들어 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제가 쓰임을 받아온 그런 인생이었던 것 같아요. 굳이 빛깔을 말하라 하면 창호지 빛에 가깝겠죠. 무색무취의 삶, 제가 살아온 삶에 저는 만족합니다.




    출처 : 네이버 인물정보





    제 목  내용   
    [문화] 평론가에서 장관까지 이어령
      이 시대 지성을 대표하는 석학(碩學) 이어령. 평론가에서 언론인, 교수, 그리고 문화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종횡무진 활약해 온 그는 한마디로 놀라운 ‘창조자’다. 그의 글은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사실을 뒤집어,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여든의 나...[more]
    [경제] 대한민국 인터넷의 아버지 전길남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 전길남 박사. 일본 오사카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UCLA에서 시스템 공학을 전공한 그는 산업화에 뒤쳐졌던 한국이 발전하려면 고급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박사학위 취득 후 한국으로 향했다. 1970년대 말 컴퓨터를 국산화하자는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 전 박사는1982년...[more]
    [사업] 허브 향보다 진한, 향기를 가진 남자
      2000년대 초반, 우리 사회는 웰빙(Well-being:신심의 안녕과 행복을 뜻함)이란 단어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고도로 발달된 산업사회는 인간에게 물질적 풍요를 안겨 주었기에 `잘 먹고, 잘 살자`라는 기치가 사회 현상으로까지 확산된 것이었다. 그로 인해, 유기농, 친환경, 녹색(그...[more]
    [정치] 국제사회 이슈의 해결사, 반기문
    반기문(대한민국, 재임 2007~)은 1944년 대한민국 충북 음성의 농촌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등학교 때 에세이 경시대회에서 수상함으로써 미국을 방문해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잠시 만난 경험을 계기로 외교관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1970년 외교부에 들어갔고, 1991년에는 외교부 유엔...[more]
    [경제] 한국 소비자 운동의 개척자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소시모)’의 창립 멤버로 외국에서는 판매 금지된 다국적 의약품이 한국에서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는 등 소비자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송보경 교수. 소비자운동이 낯설고 소원했던 시절부터 소비자운동 한길을 달려온 그녀의 인생 이야...[more]
    [사회] 사라져 가는 민족의 얼을 찾아낸 민속학자
    최연소로 시작해 17차례나 문화재위원의 자리를 지켜온 민속학자 임동권. 국내 민속학 연구를 개척한 1세대 민속학자로,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민속학의 기틀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은 월산 임동권 박사는 안타깝게도 지난 2012년 11월 25일, 86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근대화의 격랑 속에서 사...[more]
    [정치] 잡지·신문도 멀티미디어 EPUB으로 만들 수 있다
    전자책에 변화가 올까. 텍스트만 위주의 전자책이 <해리포터> 시리즈의 <예언자 일보>처럼 오디오와 비디오 재생이 가능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을까. 빌 맥코이 국제디지털출판포럼(IDPF) 사무총장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자신한다. 빌 맥코이 사무총장은 7월4일 열린 ‘IDPF 초청...[more]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