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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 허브 향보다 진한, 향기를 가진 남자
    첨부파일 fe700fa64ea49d34574f65d124acc952.jpg

     

    2000년대 초반, 우리 사회는 웰빙(Well-being:신심의 안녕과 행복을 뜻함)이란 단어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고도로 발달된 산업사회는 인간에게 물질적 풍요를 안겨 주었기에 `잘 먹고, 잘 살자`라는 기치가 사회 현상으로까지 확산된 것이었다. 그로 인해, 유기농, 친환경, 녹색(그린), 등의 단어가 성행하게 되었고, 열풍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힐링(Healing:몸이나 마음의 치유를 뜻함)이란 단어가 또 다른 사회 현상으로 대두된오래다. 고도의 산업 사회를 이루기 위해(업무, 학업, 자기개발 등을 위해 쉴틈없이 부지런을 떨어야 했던 이유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현대인들은 그 무언가로부터 정신적, 심리적인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시작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모 방송프로그램의 영향도 한 몫 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웰빙`이 육체적인 부분을 충족하는 느낌이 강했다면, `힐링`은 정신적, 심리적인 부분을 충족하는 개념이 강하다고 정의할 수 있다. 결국, 현대인들은 `웰빙과 힐링` 의 조화를 통해,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심리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 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사회적 열풍을 예감이라도 한 것일까? `웰빙과 힐링"을 몸소 실천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함을 주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라벤더, 로즈메리, 레몬버베나, 람스이어, 말로, 케모마일, 오데코롱민트, 오트로프, .. 이름만큼이나 모양도 생소한 100여 종의 허브가 커다란 대지의 농원을 가득 메운채 자신만의 향기로 방문객들의 코를 유혹하고 있는 곳은,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에 위치한, 13420(m²) 규모의 "원평 허브농원"이다.

    이 곳의 농장주이자, ()허비너스의 대표이사이기도 한 그는 스스로를 `농부`라 자처 한다.

     

     

    [절망 속에서 만난, 운명의 허브!]

     

     1987년 결혼과 동시에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귀농한 그는, 대학에서 "농업학"을 전공한 농학도이다.

    처음 재배를 시작한 작목은 상추, 시금치, 쑥갓, 열무, 배추 등과 같은 엽체류들이었는데, 대체로 단기성 작물들이라 순환이 빨랐고, 무엇보다 큰 이유는 투자 비용이 적었고, 농업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위험 부담률을 낮출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십 년쯤 지났을 무렵, 농사라는 직업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됐던 그는, 1년 중 채소값이 가장 비싼, 여름철 고온, 다습기에 대부분의 온실에 상추를 심었었다. 나름대로의 재배 기술과 노하우가 탁월했던 것일까? 여름 상추는 대풍작이었다. `목돈을 만질 수 있겠다` 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지만, 그 것은 착각이었다.

    그 해 여름은, 상추 농사를 했던 모든 농가가 풍작을 거뒀다고 한다. 왜냐하면, 외부 기온이 적절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상추 가격의 대폭락으로 인해 가진 돈 없이 몸만 남은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한 결과를 받아 들이기가 쉽지 않았었고, 스스로 감당이 되지 않았었기에 더 많은 아픔을 겪어야만 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농사를 시작한 후,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던 때였었다." 고 회상한다.

     

     그 후, 많은 고민과 갈등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을 때, 우연히 만난 식물이 허브였다.

    허브를 보는 순간, 머리에 커다란 충격이 온 것처럼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농업.. 농사라고 하면, 먹거리로만 인식하고 있는데, "허브"라는 식물을 활용해서 도시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힐링하러 오는 사람들과 소통 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소재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별다른 묘안을 찾을 수 없었던 까닭에, 젊음이라는 무기와 의지를 가지고 일주일에 거의 4~5일은 밤을 낮 삼아, 채소농사 짓던 공간을 조금씩 허브로 테마화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지 15개월.

    아버님과의 갈등, 자신과의 싸움 등.. 많은 외적 요인들이 힘들게 하였지만, 결국 "원평 허브농원"이라는 이름으로 상호를 바꾸고 농원을 일반인들에게 무료 오픈을 하게 되었다.

     

         

     

     

    [신사 한 분과의 만남!]

     

    채소농사 하던 비닐 온실 안에 조성된 허브 정원을 사람들이 찾아와 줄까? 하는 두려움과 긴장감, 그리고 실패 했을 때, 아버님께 받아야 하는 실망의 눈 빛 등등.. 만감이 교차되어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2월 어느 날, 눈이 많이 내려서 온실이 무너지게 될 지경이었다. 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눈을 치우느라 분주했는데.. 어둑해질 무렵, 신사 한 분이 찾아 왔다. `농촌진흥청`에 근무하는 연구사였다.

    혹시나, 홈페이지 하나 만들 생각이 없는가? 하여, 방문한 것이라 했다. 당시에 홈페이지가 무엇인지.. 인터넷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없던 터라, `공짜로 해 주는 거예요?` 하고 물었다.

    어이가 없던 연구사는 `그렇다` 하였고, 그 이후로 몇 날 며칠을 독수리 타법으로 밤새워가며 자료를 만들고, 사진들을 준비하며 매달린 끝에, 마침내 홈페이지(www.herbsfarm.co.kr)를 오픈 하게 되었다.

     

     

    [14억 돈보다 사람이 먼저!]

     

    통상적으로, 테마공원을 꾸미게 되면 "입장료를 얼마 받을까?"하는 논의들을 하게 되는데.. 이종노 대표는 처음부터 돈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차라리 도시민들과 함께 유기체적 관계를 가지면서 서로 따스함을 느끼고, 편안함, 소박함 속에 머물며, 심신 건강에 도움을 주는 공간으로 활용되면 그 것이 최선이다." 라고 생각했을 뿐.. 다른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러한 감성적 공간으로써의 운영이 결국은 전국의 다른 농업인들이 `벤치마킹의 장`으로 배우기 위하여 방문하는 공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홈페이지 오픈 후, 첫 해에 30,000명이 농원을 내방 했었다고 하니, 참으로 경이적인 숫자이며,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 후로, 14년이 지났다. 그는 "입장료 한 푼 안 받고 시작하여 사람들 입에서 많은 말들이 오르내렸지만, 아직도 안 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받을 생각이 없다." 고 단호히 말한다.

    왜냐하면, "진정한 의미의 재산은 돈이 아니고 사람이다." 라는 나름의 철칙을 지켜 나가고자 함 이란다.

    "그 동안 천 원씩이라도 받아 왔다면, 지금까지 내방한 사람들이 약 140만 명 정도가 되니까, 대략 14억 원이라는 돈이 공중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혀 아쉽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주변분들 덕분에 이렇게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으니, 그 것에 대한 당연한 보답이라 생각한다." 는 이 종노 대표이다.

     

     

    [잊지 못할 에피소드와 보람]

     

    수수한 작업복에 넉넉한 웃음을 가진 그는, 인상 좋은 평범한 이웃 집 아저씨 같은 느낌의 소유자다.

    그런 그에게도 보이지 않는 아픔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자연 재해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때라고 말한다.

    실제로, "폭설에 무너져 내린 온실을 바라 보면서 망연자실 했던 기억, 여름철 홍수와 태풍으로 다 날아가 버린 온실, 그리고 전기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전부 불태워 버리고 눈물 흘렸던 기억들은 지금 생각해 봐도 가슴이 저릴 만큼 아프다" 라고 회상한다.

     필자의 보람 있는 일에 대해서 묻는 질문엔, 주저 없이 "내방객들의 다양함"이라고 답한다.

    "유치원, 어린이 집부터 장애우들, 다문화 가정, 사회복지시설에서 생활하시는 분들, 치매 노인들을 비롯하여 어떤 자격과 조건 없이 누구나 방문하여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보람과 또, 26년 동안 농업 일을 해 오면서 다양한 경험과 이론, 그리고 현재 `원평 허브농원의 경영`을 중심으로 `290만 대한민국 농업인들의 마인드 제고``경쟁력 있는 농업 실현`, 그리고 `농촌을 위한 강의` 다니는 것에, 무거운 책임감과 더불어 보람을 느낀다." 고 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문]

     

    "사람중심, 감성경영"이라는 모토아래, 편안함, 소박함, 자연스러움을 기치로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운영 되는 곳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단순히 작물을 가꾸는 농장에서 벗어나 허브에 대한 교육의 장으로 가능할 수 있게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그 결과, 허브 뿐만 아니라, 화훼류에 취미가 있는데 이론 및 실무에 기초 지식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위해, 실습할 수 있도록 체험관을 오픈 하였다. 국내 최초로 허브 관련 강의와 체험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이다.

    매 주말 허브를 이용하여 다양한 물품을 만들고 음식을 만드는 `체험학습교실`은 방문객들로 하여금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또한, 15인 이상 단체 방문인 경우, 사전예약 후 방문하게 되면, 허브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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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의 6차 산업화를 지향하다.“]

     

    그는 "농업은 단순한 1차 산업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생명을 다루는 산업이며, 가공품을 생산하고 농촌체험 마을이나 쉼터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6차 산업이다" 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원평 허브농원과 ()허비너스를 통해,  1(허브생산), 2(허브가공), 3(허브체험관광) 산업을 통합 운영함으로써, 농가에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 군으로 육성, 발전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허브의 쓰임새는 참으로 다양하다. 크게는 아로마테라피, 허브요리, 화장품, 방향제, 등으로 구분할 수 있겠으나, 작은 단위로 세분화하면, 화분(분화), 향초, 향주머니, 비누, 바디오일, 미용소금, 사탕, 주방세제, 핸드폰고리, 등 허브 식물의 성분을 첨가하여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시판하고 있다. 그 제품 숫자만 해도 100여 가지가 넘는다.

     

    이렇게 끊임없는 연구 개발로 인하여, 허브에 관련된 10여 개의 특허 출원 및 실용신안,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건, 상표등록증을 보유하게 되었다. 아울러, 지난 2000년 경기 `향토문화지적재산`에 선정 됐고, 같은 해 허브 농원으로는 최초로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다. , 농림부의 `신지식농업인상`을 비롯해 수십 개의 상을 받기도 했다.

     

       

     

     

    누가 봐도 성공한 CEO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스스로를 `농부(農夫) 이 종노` 라 자처한다.

    `겸허한 농부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겸손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문명과 문화 속에서, 이 종노 대표의 허브웨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의 장(場)으로써, 오랫동안 가교(架橋) 역할을 지속해 나가길 기원해 본다.

     

     

     

     

     

     

      :  <6차 산업이란? 1차 산업인 농수산업과 2차 산업인 제조, 가공업, 그리고 3차 산업인 서비스업이

           복합된 산업으로 농가에 높은 부가가치를 발생 시키는 산업을 말한다.>

     

     

     

     

     

     

     

    작성 : 김칠성 대표 / 온라인 기사 문의 omnes@omn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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